필요악인 대사, 시각 예술의 고충

 

연극, 회화, 무용, 건축, 문학, 음악, 영화 그리고 비교적 최근까지는 사진과 만화까지

흔히들 9가지 예술로 말합니다.

영화는 1911년 제 7의 예술로 세상에 인정받았고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인정을 받았던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고 불리었던 시기가 있던 것을 아시나요?

 

 

1. 무성 영화의 몰략

1927년 10월, 영화를 바꾸다.

 

1927년 10월,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큰 변화를 시도합니다.

바로 유성, 영화가 전적인 시각과 문학의 예술에서 청각 예술을 포용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배우들은 더 이상 이야기 전달을 위해서 과장스러운 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감독은 이야기 전달을 위해서 미장센, 곧 캐릭터간의 갈등과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세트를 꾸미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캐릭터들이 그저 대화를 나누면 이야기가 전달이 되었죠.

 

이러한 변화는 고전적인 영화 제작자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좋은 연기, 좋은 카메라 쇼트가 더 이상 관객들의 호흥을 이끌어내지 못했거든요.

그저 좋은 이야기에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만 있으면 영화는 불티나게 팔려나갔죠.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이러한 중심에 서 있던 배우 중 한명입니다.

찰리 채플린은 무성영화에서 좋은 연기가 무엇인지 알았으며 훌륭한 편집점을 통하여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 낼 줄 알았습니다. 미장센도 훌륭히 만들어내었죠.

 

허나 유성 영화가 시작함으로써 찰리 채플린의 연기는 다소 많이 과장된 연기로 평가를 받았고

또한 편집과 미장센의 필요가 떨어짐에 따라 채플린의 영화는 다소 늙은 방식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유성 영화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았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채플린이 '쇼는 끝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고도 합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갔고, 유성 영화가 과거 무성 영화의 유산들을 다시 채택함에 따라서

무성 영화는 역사의 한켠으로 남게 됩니다.

 

 

1-2.왜 무성 영화가 예술이야? 미장센!

 

무성 영화의 역사를 일부 담은 영화 '아티스트' 무성배우의 검은색과 유성배우의 하얀색이 조화를 이룬다.

 

왜 사람들은 그렇다면 당시 무성 영화만이 예술이라고 이야기를 했을까요?

 

영화는 초창기에 문학을 기반으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문학의 아름다운 문장을 영상에 담고자 노력을 하였죠.

그렇게 영화는 다양한 이론을 정의해가며 문학의 글귀를 시각으로 옭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Mise En Scene (미장센)입니다.

 

시민케인 (출처 나무위키)

 

미장센은 쉽게 풀어서 무대 배경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르게 말하면 영화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담을 수 있게해주는 배치를 말합니다.

 

지금 위 장면을 잠깐 살펴볼까요?

 

(시각적인 표현)

두 남자는 문을 열었습니다.

무거운 느낌의 검은 색을 차려입고 있으며

조명이 그들의 뒤에 배치가 되어 검은 색이 부각이 되어 보입니다.

옷이 그들이 어떠한 존재인지 표현을 해줍니다.

 

(문학의 시각화)

그녀는 우울한 삶을 살았고, 테이블의 약병이 그녀의 인생의 끝을 알립니다.

 

(시각적인 표현)

카메라는 조명과 포커싱, 렌즈를 통하여 약병을 앞에 배치하고 강조하는 것에 반해

여자에게는 포커싱이 하나도 없으며 조명을 일절 배치하지 않아 생기가 없게 표현합니다.

 

유명한 시민케인의 창문 쇼트

 

또 다른 예시입니다.

 

(시각적인 표현)

여자가 검은 옷을 입었고 조명이 얼굴에 강하게 들어가 창백해 보입니다.

그 뒤의 두 남자의 옷을 보면, 왼쪽에 있는 남자는 가난하게 옷을 입고 있는 반면에

오른쪽 남자는 귀티가 나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머리도 또한 잘 정돈이 되어있죠.

그리고 그 뒤 창문을 보면 순수를 표현하는 눈을 배경으로 꼬마가 갖혀있습니다.

 

(문학의 시각화)

여자와 남자는 가난한 집에 살고 있으며 부자의 남자와 거래를 합니다.

뒤의 남자 아이는 순진하게 밖에서 놀고 있지만, 부모의 결정에는 그 남자아이의 의견이 빠져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맡긴채로 그저 집 안을 바라만 봅니다.

창문은 그 아이와 집의 사실상 단절을 표현합니다.

 

 

예시를 든 영화는 유성 영화이지만, 이러하듯 무성 영화는 문학을 표현하기 위해서

미장센이라는 것을 정의하고 영상에서 문학을 읽을 수 있도록 규칙을 정리했습니다.

그것들은 현제까지 이어지고 오고 있고 동시에 영화가 시각 예술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허나 유성 영화는 아까도 말했듯 초기에는 기술과 예술을 합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지금이 게임 산업이 동키콩의 텍스쳐 스토리와 닌자 가이덴의 컷씬 이후로 스토리 텔링에 있어서 정체가 된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유성 영화는 그저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서 미장센을 포기하고 미장센을 대신하여 대사를 사용했습니다.

다만, 그러한 영화들은 영상을 제외하고 사진으로 아니 심지어 오디오만 들려줘도 영화를 이해하는 대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그러한 유성 영화들이 투웨이 전략처럼 갈려서 상업 영와 예술 영화로 분류가 되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2.나는 흑백이 좋아.

 

카사블랑카, 1942

 

무성 영화의 시대가 끝나고 유성 영화가 표준화가 되던 시점에 또 한가지의 혁신이 시작됩니다.

바로 영화에 색이 생긴 것이죠. 과거에 컬러 영화를 만들려면 컨버스로 한장한장 칠하던 것과 다르게

녹화하는 순간부터 컬러로 제작되어 대량 보급이 가능한 기술이 생긴 것입니다.

 

영화계의 반응은 과거 유성 혁명과 똑같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컬러는 너무나 화사하고 진지하지 않다라는 것이 유명한 이유.

그렇다면 영화계에서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명암, 빛과 어둠의 대비

 

명암에 있습니다.

영화는 본디 미장센을 정의하던 시절에 흑백을 베이스로 두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백 영화의 거의 끝 시절에는 영화 이론이 거의 다 정립이 되고 있었죠.

영화는 완성이 되어가는 장르었던 것입니다.

컴퓨터로 생각을 하자면, 2진수 0과 1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10진수로 다른 숫자들을 넣는 것이 무슨 득이냐는 것이었죠.

 

그리고 현제까지는 실제로 그렇습니다.

컬러가 상용이 됨에따라 다양한 색깔로 다양한 뜻을 내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너무나 다양한 색이 있어서 미장센을 읽는 대에 있어서 거추장스럽고

온갖 미사어구들이 색을 통해서 같이 나오게 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영화는 생각보다 문학에 뿌리를 깊게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에서는 색이 굉장히 다양하게 표현이 됩니다.

예를 들자면 빨간색은 피와 열정으로, 하얀색은 순수함으로, 검은색은 무거움과 악으로 말이죠.

그러나 보라색이나 연청색 같은 색깔들은 아직 문학에서도 정의를 내리지도, 사실 굳이 정의를 내리지도 않습니다.

 

허나 영화를 촬영함에 있어서 컬러를 제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미장센을 읽어보면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되었죠.

'그가 서 있는 장소는 매우 축축했다. 노랑색 형광등과 보라색 그래비티, 녹이 쓸어 생긴 갈색이 터널을 감싸안았다.'

 

여기서 맥략상 필요한 부분은 축축이라는 느낌 하나죠. 허나 컬러는 다른 부분들에도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긴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디즈니에서는 아직도 색을 제어하고 있고

아직도 영화 감독들은 흑백을 선호하고 영화로 제작을 하기도 합니다.

 

영화 로건, 2017년에 개봉되었지만 흑백으로 상영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당장의 메인스트림은 컬러입니다.

이제 다시는 흑백이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오는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과거 유성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궁금하네요.